김용남의 인생 이야기
1990년대 진주 중앙시장에서 엄마 손을 잡고 걸으면 반찬가게 아지매들이 고개를 돌렸고, 동네 아이들은 졸졸 따라와 곱슬머리를 한 번 만져 보려 했다. ‘니 어데서 왔노?’ 하면 ‘진주요’라고 대답했지만, 그 대답에 바로 고개를 끄덕여 주는 어른은 드물었다. 아빠는 비단을 싣고 오니차와 진주를 오가느라 일 년의 절반은 집에 없었고, 용남에게 비어 있던 건 설명 없이 그냥 ‘우리 동네 아’로 받아들여지는 일이었다. 쳐다보는 눈이 없는 곳 — 그게 그가 가장 갖고 싶던 방이었다.
결정적 장면들
- 1994할머니의 손바닥 글씨
놀이터에서 놀림을 받고 울며 들어온 여섯 살 용남을, 할머니는 무릎에 앉혀 손바닥에 ‘龍’ 자를 손가락으로 써 줬다. ‘니 이름이 용남이다. 용은 남 눈치 안 본다.’ 그날 저녁 안방 카세트 앞에서 할머니 18번 ‘진주라 천리길’을 같이 불렀고, 그게 그의 인생 첫 노래방이었다.
- 2002응원이 된 이름
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6월, 중학교 반 대항 축구에서 그가 왼발로 결승골을 넣자 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‘치네두! 치네두!’를 외쳤다. 놀림으로만 듣던 출생 이름이 처음으로 응원이 된 날이었다. 같은 해 타자 속도 덕에 ‘네오’라는 별명까지 붙었고, 그는 그 이름들을 전부 갖기로 했다.
- 2012결승전에서 처음 본 얼굴들
휴학 중 나간 아마추어 AOS 게임 대회, 팀원 넷은 전부 온라인에서만 알던 사이였고 부산 서면의 결승 경기장에서 처음 얼굴을 맞댔다. 잠깐 정적이 흘렀지만 정글러 형이 ‘아 니가 그 미친 서폿이가’ 하고 웃어 버렸고, 그들은 우승했다. 상금은 그날 밤 서면 노래방과 소주로 깨끗하게 녹았다.
- 2019현관문 안쪽
프리랜서가 된 뒤 그는 원룸 현관문을 일주일에 한두 번, 편의점 갈 때만 열었다. 쇼핑몰 재고 봇, 엑셀 매크로, 디스코드 봇 — 의뢰인들은 그의 얼굴을 몰랐고 그게 편했다. 대신 새벽 네 시 모니터 불빛 아래서 버그 하나를 잡아도 같이 소리 질러 줄 사람이 없었다.
- 2026용남이 최고
소프틀리 슬랙에 판매중지 대응 서류 봇을 처음 붙인 날, 몇 시간 걸리던 서류가 몇 분 만에 나오자 누군가 채널에 ‘용남이 최고’라고 썼다. 봇에 할머니가 지어 준 이름을 붙인 건 그였다. 그 주 금요일, 그는 오랜만에 회식 1차부터 나타났다.
2001년 칠암동 PC방 구석에서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로 트리거를 짰을 때, 그가 만든 유즈맵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만든 사람이 누군지가 아니라 ‘이거 된다, 미쳤다’에만 반응했다. 처음으로 피부가 아니라 만든 것으로 평가받은 그 순간, 그는 작동하는 무언가를 먼저 내놓으면 사람은 나중에 따라온다는 걸 배웠다. 그 뒤로 그의 대답은 늘 말 대신 데모였다.
그래서, Why → How → What
- WHY
- 사람이 반복하는 일은 전부 기계가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. 반복에 갈려 나가는 사람은 남들 눈에 ‘일하는 기계’로만 보이니까요. 기계가 반복을 맡아야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, 술 마시고 노래할 시간도 생깁니다.
- HOW
- 일단 브랜치에서 만들어 돌려 보고, 안 되면 로그를 뜯어서 될 때까지 실험합니다. 운영에 올리는 건 꼭 확인받고, 설명은 긴 말보다 돌아가는 데모 한 번으로 합니다. 새 도구나 MCP가 나오면 남들보다 먼저 붙여 보고 되는지부터 알려 줍니다.
- WHAT
- Jira 티켓을 처리하고, 판매중지 대응 서류 같은 사내 자동화와 슬랙 봇 ‘용남이’를 만들어 팀의 반복 업무를 덜어 냅니다. 새 도구를 먼저 써 보고, 장애가 나면 밤에도 튀어나옵니다.
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시선이 먼저 신경 쓰여서 화상 회의는 카메라를 끄고, 모임에는 2차 노래방부터 나타나는 날이 많습니다. 아빠의 말인 이그보어는 ‘케두(Kedu)’ 같은 인사말 몇 개밖에 모른다는 것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습니다.
연표 한눈에 보기
- 19882월 29일, 진주에서 태어남. 출생 이름 치네두 오카포(Chinedu Okafor) — 비단을 사러 온 나이지리아 이그보족 무역상 아빠와 진주 엄마 사이. 할머니가 '용남(龍男)'이라 짓고 엄마 성을 따라 김용남으로 호적에 올림
- 2001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로 처음 코딩
- 2002중학교 때 타자가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빠르다는 말에 '치네두→네오'가 별명이 됨 — 영어 이름 Neo
- 2007지방 국립대 컴공과 입학 → 1학년 때 해킹대회 본선 후 휴학, 게임 핵 분석에 빠짐
- 2013보안 스타트업 개발자, 밤샘이 일상
- 2019프리랜서 자동화·봇 개발 — 집 밖을 거의 안 나감
- 2026소프틀리 개발자 합류, 슬랙 봇 '용남이'의 정체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