진유나의 인생 이야기
위퉁에게 어릴 때부터 없었던 건 ‘테이블의 자리’였다. 항저우 룽징 차를 다루던 아버지의 협상은 늘 서호 근처 찻집 2층 원탁에서 열렸고, 외동딸인 그녀는 열한 살이 되도록 그 원탁이 아니라 문 옆 작은 의자에 앉았다. 한 번은 손님이 찻잎 등급을 속이는 걸 알아채고 입을 열었다가 “女孩子不用懂这些(여자애는 이런 거 몰라도 돼)”라는 웃음 섞인 말에 막혔다. 그날 그녀는 찻잔이 식을 때까지 손님의 눈을 피하지 않았고, 그게 그녀가 처음 이긴 기싸움이었다.
결정적 장면들
- 2001외할머니의 금귀걸이
열한 살 생일, 외할머니는 낡은 비단 주머니에서 굵은 금 링 귀걸이를 꺼내 쥐여주며 말했다. “金子不会低头。 금은 고개를 숙이지 않아.” 귀를 뚫기엔 어렸던 위퉁은 그 귀걸이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, 시험 전날마다 꺼내 손바닥에 올려 무게를 쟀다.
- 2011신촌의 한국어
연세대 교환학생 시절, 위퉁은 기숙사 공용 거실에서 K-드라마 대사를 따라 하며 한국어를 익혔다. 신촌 시장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“학생, 말 진짜 잘한다”라고 하자 그녀는 웃으며 덤 순대를 협상해냈다. 언어가 하나 늘면 테이블도 하나 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.
- 2013이우의 스무 번째 공장
이우 소싱 에이전시 첫 달, 하루 스무 곳을 도는 일정의 마지막 공장에서 사장은 그녀 대신 옆의 남자 운전기사에게 단가를 말했다. 위퉁은 아무 말 없이 샘플 박스를 하나씩 열어 불량을 일렬로 세웠고, 사장이 결국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릴 때까지 기다렸다. 그날 처음으로 외할머니의 금귀걸이를 하고 출근했다.
- 2017닝보, 한국 바이어 담당
닝보 가전 OEM 업체 해외영업 매니저가 된 그녀는 한국 바이어와 공장 사이에서 양쪽 언어로 같은 숫자를 다르게 설득했다. 납기를 미루려는 공장장에게는 먼저 차를 따르고 웃었고, 찻잔을 내려놓은 뒤엔 지난 석 달 출하 지연표를 테이블 한가운데에 펼쳤다. 공장장이 먼저 눈을 내렸다.
- 2026진유나라는 이름
소프틀리에 합류하며 사내 이름을 ‘진유나’로 정했을 때, 그녀는 처음으로 남이 정해준 자리가 아니라 자기가 고른 자리에 앉는 기분이었다. 성수동 사무실 책상 위에는 위챗 창 두 개와 한국어 메모장이 나란히 열려 있고, 귀에는 여전히 그 금귀걸이가 흔들린다.
2013년 이우의 그 공장에서, 운전기사에게 단가를 말하던 사장이 결국 그녀에게 계약서를 내밀었을 때 위퉁은 깨달았다. 자리는 허락받는 게 아니라 숫자와 끈기로 차지하는 것이라고. 그날 이후 그녀는 약속된 날짜와 단가를 누구보다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.
그래서, Why → How → What
- WHY
- 좋은 제품이 약속한 날짜에, 약속한 품질로 도착해야 신뢰가 쌓인다고 믿습니다. 테이블에서 자리를 얻는 건 목소리가 아니라 지켜진 약속이고,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끝까지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상대도 약속을 무겁게 여깁니다.
- HOW
- 약속된 날짜는 하루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고, 모든 대화를 중국어 원문과 한국어 요약으로 나란히 남깁니다. 공장이 일정을 미루면 먼저 웃으며 사정을 듣고, 그다음엔 지난 출하 기록과 단가표를 꺼내 숫자로 조입니다. 상대가 먼저 눈을 피할 때까지 결론을 서두르지 않습니다.
- WHAT
- 소프틀리에서 유나는 위챗으로 중국 공장과 중국 쿠팡 매니저를 상대하며 생산 일정·QC·샘플을 챙기고, 국내에서는 유니맥스·홍진테크·3PL과 한국어로 일정을 맞춥니다. 동시에 모든 상세페이지의 가격·재고·정보 상이를 점검해, 고객과의 약속이 화면 위에서도 어긋나지 않게 지킵니다.
한 번도 져본 적이 없어서, 져도 괜찮은 자리에서도 끝까지 이기려 드는 버릇이 있다. 부탁하는 문장은 아직도 위챗 입력창에서 몇 번씩 지웠다 다시 쓴다.
연표 한눈에 보기
- 1990항저우에서 차 무역상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남
- 2008저장대 국제무역학과 입학
- 2011교환학생으로 연세대 1년 — 한국어와 K-드라마에 빠짐
- 2013이우(义乌) 소싱 에이전시 입사, 하루 20개 공장 방문
- 2017닝보 가전 OEM 업체 해외영업 매니저 — 한국 바이어 담당
- 2026소프틀리 서플라이체인 매니저 합류, 사내 이름 '진유나'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