윤하준의 인생 이야기
하준이 자란 일산 집은 1층이 엄마의 피아노 학원, 2층이 살림집이었다.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체르니 30번이 틀린 마디에서 끊겼다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고, 엄마는 그 시간 내내 남의 집 아이들의 손목 높이를 고쳐 주었다. 일곱 살 하준은 계단 중간에 앉아 마지막 레슨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음과 음 사이의 짧은 정적을 손가락으로 셌다. 그 집에 없던 건 조용함이었고, 조용한 틈에 자기 이야기를 꺼낼 기회였다.
결정적 장면들
- 2006계단의 메트로놈
학원 발표회 날, 하준은 무대 대신 객석 맨 뒤에서 남의 아이들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. 집에 돌아와 엄마가 꺼둔 메트로놈을 혼자 다시 켜고, 똑딱 소리 사이의 빈칸이 음보다 더 좋다는 걸 처음 알았다. 그날 일기에는 ‘쉼표가 제일 좋다’ 한 줄만 적혀 있다.
- 2015고장 난 필름 카메라
고1 겨울, 일산 오일장 고물 좌판에서 셔터가 반쯤 걸리는 필름 카메라를 만 원에 샀다. 컬러 필름이 비싸 흑백만 넣고 다녔는데, 색이 빠진 사진 속에서 호수공원 벤치와 학원 간판이 전혀 다른 표정을 지었다. 덜어내면 오히려 말이 많아진다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다.
- 2018더 채우라는 말
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첫 크리틱에서 교수는 그의 포스터를 보고 ‘비어 보인다, 더 채워라’고 했다. 하준은 밤새 요소를 더했다가 새벽 네 시에 전부 지우고 원래 안으로 냈다. 점수는 낮았지만, 그 포스터는 지금도 그의 책상 위에 붙어 있다.
- 2022다섯 개 중 세 개를 빼는 손
한남동 패션 편집숍 아트디렉션 어시스턴트 시절, 디렉터는 그가 공들여 올린 진열대에서 다섯 점 중 세 점을 말없이 내렸다. 남은 두 점만으로 매장이 갑자기 숨을 쉬기 시작했고, 그 주 매출은 오히려 올랐다. 하준은 그날 처음으로 자기 취향이 ‘부족함’이 아니라 ‘기준’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.
- 2024개인전 ‘쉼표’
을지로 골목에서 찍은 흑백 사진 스물네 점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. 마지막 날 학원 문을 일찍 닫고 온 엄마가 사진 앞에 오래 서 있다가 ‘이건 꼭 악보의 쉼표 같다’고 했다. 이십오 년 만에 엄마가 그의 빈칸을 들어준 순간이었다.
편집숍에서 디렉터가 진열대의 세 점을 내리던 날, 하준은 어린 시절 계단에서 세던 정적이 결핍이 아니라 감각이었다는 걸 알았다. 시끄러운 집에서 조용함을 찾던 습관이 그대로 브랜드에서 소음을 걷어내는 눈이 되었다. 그 뒤로 그는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먼저 묻는다.
그래서, Why → How → What
- WHY
- 덜어낼수록 브랜드가 선명해진다고 믿습니다. 정보와 색이 넘치는 화면 속에서 사람들이 오히려 숨 쉴 틈을 찾는다는 걸, 소리가 끊이지 않던 집에서 자라며 먼저 알았기 때문입니다. NDNS가 고객에게 ‘조용하지만 확실한 하나’로 기억되길 바랍니다.
- HOW
- 흑백과 여백, 원칙을 먼저 정하고 예외를 줄입니다. 화보 한 컷을 볼 때도 ‘이 요소가 빠지면 무엇이 무너지는가’를 묻고, 무너지지 않으면 뺍니다. 감으로 거절하지 않도록 톤 가이드에 이유를 한 줄씩 적어 둡니다.
- WHAT
- NDNS 아이덴티티와 무드보드, 화보 디렉션 가이드를 만들고 상세페이지의 톤을 검수합니다. 컷 하나, 여백 하나가 브랜드의 목소리를 흐리지 않게 지키는 게 그의 일입니다.
브랜드에선 남길 것만 남기는 데 단호하지만, 정작 자기 의견을 소리 내어 말하는 건 아직 어렵다. 회의에서 하고 싶은 말은 여전히 메모장 여백에 먼저 적힌다.
연표 한눈에 보기
- 1999일산에서 피아노 학원 원장 엄마의 외아들로 태어남
- 2018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입학
- 2022패션 편집숍 아트디렉션 어시스턴트
- 2024흑백 사진 작업으로 첫 개인전
- 2026소프틀리 NDNS BX 디자이너 합류

